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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제목 만남에서 이별까지
작성자 김상철 작성일 2018-09-17 14:41:00
아래와 같이 글을 작성했지만 여행후기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문단의 모양이나 줄간격등은 전혀 반영이 안되니 보기가 매우 민망합니다.
하여 홈피관리자는 여행후기 글쓰기와 보기가 같이되게 수정 요청합니다.


청풍김씨 백두산 여행기 2018년 8월 15일 ~ 20일



1일차 : 밤새워 항해 끝에 다다른 단동



2일차 : 자국민 먼저 입국허가 하고 타국민 나중에 입국하니 그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우 느린 중국인의 기질이 보이는 듯 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어느덧 땅을 내 디딘지 2시간여 입국 수속이 끝나고 바로 버스에 나뉘어서 승차를 하고 집안으로 출발한다. 집안은 옛지명으로 국내성으로 알고 있다.
버스안에 낮선 사내아이 하나가 조금은 부족한 듯하면서도 유창하기도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이번여행에서 안내를 맡은 허금봉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금으로 된 봉우리를 만들라해서 금봉이라 지으셨답니다."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아버지는 중국 국적이고 북한에 계시며 다른 형제들은 이곳 중국에 살고 있다며 북한에서 한국어를 배워서 북한말이 자주 나오게 되며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며 잘못 말할 수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은 이번여행 내내 가이드 이름을 홍금보라고 불렀다. 허금봉아라고 들었지만 홍금보로 생각이 나서)

그리고는 단동과 신의주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 등을 설명하면서 압록강 신대교를 보면서 건설 후 완공한지 15년이 지나도록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북한이 연결도로를 만들지 못하여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는 다리라고 설명하고, 압록강 철교를 설명하면서 전쟁(한국동란)때에 부서진 다리라고 설명하는데 사실은 한국동란 당시 맥아더 장군이 중국군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만주를 폭격하려 하였으나, 미국대통령의 만류로 다리를 폭격하여 중국군의 남하를 막았다고 배웠지만 사상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고 그냥 얼버무리는 등의 설명으로 일관하였다.

그리 설명하고는 집안을 향하여 가면서 고구려의 역사에 관하여 설명을 한다. 특히 광개토대왕과 유리왕, 주몽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박한 지식으로 풀이한다.

한참을 가다가 창밖을 보면 길옆에 보이는 복숭아 밭이 즐비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허금봉이 설명한다.
이번여행에서 3가지 아니 4가지 천지를 보실수가 있습니다. 그 4가지 천지가 무엇일까요? 1.복숭아천지, 2.옥수수천지. 3,사람천지, 4.그리고 백두산천지 입니다. 백두산에 거시면 하루에 3만여명이 천지에 오른답니다.

사실이지 하루종일 5시간여를 걸처서 단동에서 집안까지 가지만 도로옆은 항상 옥수수 밭이 늘어져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심고 수확하고는 어떻게 할까? 하고 궁금하던차에 허금봉이 설명한다.

심을떄와 수확할 때에는 정부에서 사람들을 보내서 노동을 시키고 이 노동자들이 먹고 살수 있는 금전혜택을 주기 위하여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며, 모두 인력으로만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 또한 13억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집안에서 고구려의 역사와 수도의 이동 과정과 광개토대왕비, 왕릉을 보고 느낌은 고구려의 기상은 있는데 역사는 많이 일그러져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집안을 출발하여 통화시로 와서 금화미식에서 저녁을 먹고, 유리왕릉을 못 보았으니 통화시 야경이라도 15분간 보기로 하여 강변에 설치된 미네르바를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룻밤을 묵을 숙소인 후이핑호텔에 왔다.



3일차 :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5시간이 걸려서 이도백하로 이동해서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궁성반점) 백두산으로 2시간여 걸려서 가서, 버스 타고 다시금 40분 걸려서 백두산 원시림길을 가서, 10인승 소형승합차를 타고 30분간 정상으로 올라가서 천지까지 200여 미터를 걸어서 북쪽 정상으로 갔다.

대부분 백두산의 맑은하늘은 보기가 어렵다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조상님의 은덕이 있어서인지 맑은 하늘의 백두산 천지를 보았다. 이 또한 허금봉의 지혜가 있어서 이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허금봉 가이드는 일단 올라가면 낮은 곳을 먼저 보시고 시간이 남으면 높은곳으로 올라가서 보시라고 안내 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구름이 몰려와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시금 소형 승합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관광버스를 타고 비룡폭포로 갔다. 이때는 날씨가 매우 맑음이었다.

여기서도 아쉬운 부분은 역시 시간이었다.

시간에 쫓기어 숨을 헐떡이면서 비룡폭포가 잘보이는 전망대까지 올라 가서 사진 몇장 찍고 돌아 왔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지만, 가이드에게는 미안해도 그래도 이런 기회가 많지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이제 다시 백두산산문 아래로 와서 텐치투어빌리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하여 불놀이를 하고 노래방을 즐기고, 근처인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는 숙소로 이동해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에는 서쪽정상에 오르려 한다.



4일차 :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인가하고 보니 아마도 백산인것 같았다. 아침을 먹었지만 음식이 아주 중국식도 아니오, 그렇다고 한국식도 아니고 아마도 중국과 평안도식이 섞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숙소는 5성급 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든다. 아침이 되어서 보니 백계복일주점 이라고 쓰인것 같았다. 맞는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10여분 후에 장백산문에 도착하여 제1착으로 서쪽 정상으로 오르려 한다. 버스를 타고 40분 후에 서파 입문에 도착해서 1442계단을 오르려 한다.
어머님을 가마로 80,000원(약490위안)에 (가격표에는 올라갈 때에 65,500원(400위안) 내려올 때에 49,000원(300위안) 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바가지 요금이다) 올라 갔다. 그리고 올라가서는 또 10,000원을 더 팁으로 주셨다고 하신다. 바가지가 극성이다. 여기서 한국인은 봉이다.
여하튼 올라가서 잘보고 내려오면 아쉬움은 없겠지만 이렇게 올라가서 제대로 못 보고 내려오면 아쉬움이 클것 같았다.
우리는 조상님의 은덕으로 천지를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산을 하고 점심식사를 텐치투어빌리지에서 맛나게 먹고 레프팅을 하기 위하여 다시금 장백산문으로 올라 간다.
여기서 레프팅을 하신분들의 똑같은 이야기가 안했으면 후회될뻔 했다 하신다. 모두 즐거웠다고 해서 다행이다.
하여튼 여기서도 그냥 보내면 섭섭하겠지 서비스는 없지만 그래도 레프팅 사진 한장 없으면 아쉽지만 한장 정도는 서비스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쇄 한장 하고는 5천원 받으니 원가대비 4천원은 남는다. 나도 여기서 장사할까 보다.
즐겁게 즐겼으니 이제 이동이다 5시간을 걸려서 통화시로 이동하여 저녁을 금화미식에서 맛나게 먹고 마사지를 받았다.

숙소는 역시 후이핑호텔이다.



5일차 : 또 버스를 타야한다. 이제는 엉덩이가 버스타기를 거부하려한다. 너무 오래 탈것을 생각하니 벌써 엉덩이가 쑤신다. 통화시에서 단동으로 가야 하니 5시간은 타야 한다. 에고 엉덩이야.
중간에 강원휴게소에서 저희 판봉회장님께서 지원하신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셨다. 마침 맛있게 드시고 당보충하고, 단동시에 있는 압록강단교에서 유람선타고 북한인들 강가에서 생활상을 유람하고 다시금 버스에 올라서 조선족용가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단체사진 한장 찍고, 버스안에서 그저께 저녁에 노래방 경연에서 상금으로 탄 20만원에 박용애여사가 1만원을 보태서 받은 돈으로 복숭아를 사서 한개씩 나누어 주었다. 끊어진 압록강철교 밑에서 기념사진 찍고 바로 58분 걸려서 단동항으로 이동하였다.
단동항에서 홍금보와 이별하고 단동페리에 올라서 귀국길에 들어섰다. 귀국선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취침하며 인천항을 향하여 남하한다.




6일차 : 새벽에 떠드는 소리에 깨여 보니 4시50분 이다. 며칠간 새벽 5시에 기상을 하시더니 이제 몸에 배였는가 보다. 선상에서 아침 일출을 보려고 갑판에서 기다린다. 동녁이 훤하게 밝아오더니 태안 앞바다에서 아침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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